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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854호

GLOBAL EDU 유학생 해외통신원

나는 명품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프랑스 교육의 특징이 아닌 것은?

다음 중 ‘프랑스 교육’의 특징이 아닌 것은?
① 논술형 대학 입학 시험 ‘바칼로레아’
② 대학 서열의 평준화
③ 교육의 바탕인 인본주의
④ 국민의 권리인 무상교육
⑤ 공교육에 대한 절대적 신뢰

한국의 교육과 상반되는 다섯 개의 보기 모두 프랑스 교육의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답이 있다. 바로 ‘프랑스 교육의 특징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라는 물음 자체가 프랑스식 교육이 아니다. 이렇듯 답을 찾는 객관식 시험에 익숙한 나에게 프랑스 교육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왔다.
유학을 마음먹는 사람은 특별한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유년 시절 외국에 살다온 경험이 있어 외국어가 편하거나 가족이 외국에 있다거나 혹은 원하는 학교를 가는 과정이거나 등. 첫 출발부터 인맥, 경제력 그리고 정보력의 삼박자가 중요하기 때문에 유학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막상 여정을 시작하는 이는 흔치 않다. 하지만 어떠한 조건도 없는 상황에서 내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것은 ‘무지의 힘’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프랑스 교육이 궁금해 유학을 준비했다. 12년 동안 한국 공교육을 거치며 오지선다형 시험에 길들여진 토종 한국 학생이 지구 반대편에서‘우리는 모든 것을 논증할 수 있는가’ 같은 논술형 철학 시험으로 대입을 치르는 프랑스의 교육 제도가 궁금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교육이 가능한지 알고 싶었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프랑스를 경험해보기로 했다.
유학 이유에 대해 좀 더 솔직해보자. 수험 생활을 하며 프랑스어의 기초인 아베쎄데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유학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특히 대학 입시가 목표인 한국 고교에서 나는 모난 돌이었으며 2년간 해 오던 학생 대표 일도 계속할 수 없었다. 좀처럼 늘지 않는 불어만 붙잡고 어영부영 보낸 시간과 희미해져가던 목표에 방아쇠가 되었던 사건은 교장선생님의 졸업식 연설이었다. “여러분, 명품 인간이 되십시오”라는 말은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어떻게 사람에게 서열을 매기고 상품에 빗댈 수 있을까.
명문대 타이틀을 얻고 스펙을 쌓으며 대기업의 부속품이 되어 일하는 인재가 되도록 부추기는 사회에선 당연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였던 것 같다. 공부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하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싶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철학이었다.



답이 없는 질문을 문제로 내는 괴상한 나라
프랑스 대학 철학과 학생이라니 괴상하기 짝이 없다. 이미 한국에선 자취를 감추어가는 비인기학과인 데다 진로도 불투명한 학문을 공부하겠다고 프랑스까지 가다니. 고독한 여정에서 수많은 질문을 마주했다. “철학 공부해서 어디다 쓰니?” “철학 하려면 독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니?” 등. 모국어로도 머리에 쥐가 나는 철학 서적을 불어로 읽고 작문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까지 해야 할 이유가 뭔지를!
한국에서도 철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철학에서 기대하는 부분은 프랑스에서만 배울 수 있었다. 바로 ‘철학적으로 생각하기’ 다. 물론 프랑스 철학과에서도 한국처럼 철학자들의 견해를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작문 시험에서는 순수한 본인의 철학적 견해를 논증을 통해 펼쳐야 한다.철학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이 학문의 핵심이며 철학자를 만들어내는 교육이다.
철학적 논증을 평가하는 작문 시험에서는 ‘결정을 자유의지에 의한 결정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가’ ‘우리는 윤리를 말할 수 있는가’ 등의 한 문장이 주어진다. 4시간 동안 프랑스식 글쓰기 구조에 따라 서술해야 한다. 시험이 질문에서 출발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쓸 수는 없다. 질문에 문제점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왜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지’를 고민하면서 시작된다.



1. 대학에 지원하기 전 1년 반 동안 프랑스어 수업을 들었던 어학원에서의 소중한 추억.
2. 고교 친구가 파리에 놀러 왔을 때 에펠탑 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3. 토요일 아침 8시부터 4시간 동안 대강의실에서 치르는 작문 시험의 생생한 현장.
4. 한국인 집주인에게 받은 수십 권의 프랑스어 철학 서적.


애증의 그녀 La France
자유·평등·박애로 대표되는 정신, 감미롭게 귀에 울리는 불어, 와인과 미식 등 프랑스는 그 자체로 비교될 수 없는 브랜드며 판타지지만 그곳이 삶의 터전이 된 유학생들은 더딘 행정 처리, 테러 위험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마주한다. 그러나 유학생이 머물기에 프랑스는 분명 매력적인 나라다. 대학 등록금이 1년에 40만 원 정도라 부담이 없을 뿐 아니라 학생 비자만 있으면 언제든 박물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주택보조금과 저렴한 교통권 등 모든 학생 혜택을 유학생에게도 제공한다.
단 시간이 지나도 어학에서 일정 실력을 갖추지 못하는 학생들에겐 가차없이 기회를 빼앗으며 대학에서 두 번 유급 시 같은 학문은 더 이상 공부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뜻인 ‘ça dépend’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는 프랑스인이지만 능력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La France, 여성명사인 프랑스. ‘그녀’는 가장 찬란한 순간과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유학을 유학생에게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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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진(철학) sirongsae@gmail.com
  • GLOBAL EDU 유학생 해외통신원 (2018년 04월 8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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