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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856호

GLOBAL EDU 학부모 해외통신원

불편한 아날로그 고집하는 스페인 학교에서 배우는 것




유럽 학교는 왠지 한국보다 자유롭고 여유로울 것 같다는 인상이다. 나 역시 스페인에 오기 전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은 겪어봐야 안다고, 현지 학교의 규칙은 만만치 않았다. 학생들은 무거운 사전을 몇 권씩 들고, 지갑과 휴대폰 없이 학교에 다녀야 한다. 학부모도 학교 규칙을 지켜야 한다. 등하교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교문 앞에 데려다주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하루 종일 아이의 생활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는 셈. 이민 초기, 21세기와는 동떨어진 듯한 학교 규칙이 답답하고 불편했던 것은 당연하다.



휴대폰은 물론 용돈과 전자사전도 NO!
스페인 학교에 아이를 보내며 가장 당황한 부분은 등하교 규칙이다. 저학년들은 부모 없이 등하교할 수 없다. 초등학교까지는 부모가 직접 등하교를 시켜야 한다. 급식 대신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면 하루에 네 번이나 학교에 가야 한다.
게다가 아침 등교를 제외하곤, 교사가 학부모나 보호자 얼굴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아이의 반응까지 본 후에야 교문 밖으로 보내준다. 아이가 부모나 조부모 등 데리러 온 가족의 얼굴을 확인하고 이름을 불러야 하교할 수 있다. 친구와 못다 한 얘기를 하느라 엄마 얼굴에 시선을 주지 않을 땐, 눈이 마주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 명 한 명씩 일일이 점검하니 시간이 꽤 걸린다. 아들이 새로 사귄 친구와 수다를 떠느라 내 눈을 마주치지 않아 마냥 기다려야 했던 적도 많았다.
처음엔 다소 불편했지만, 그만큼 안전을 중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돌아보니 스페인 부모들은 학업엔 관대하지만 자녀의 안전이나 건강엔 극성스러울 정도로 예민하다. 학교뿐만 아니라 친구 집에 놀러갈 때도 부모가 직접 데려다주는 것은 물론 집안에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다.
학교에 가져오면 안 되는 물품도 있다. 바로 휴대폰, 비상금, 전자사전이다. 우리와 달리 부모들이 아예 사주지 않는다. 아들 같은 외국 학생도 예외 없이 무거운 사전을 들고 다녀야 한다. 덕분에 영어-스페인어 사전과 스페인어-영어 사전, 스페인어-발렌시아어 사전까지 3권의 두꺼운 사전을 이고 지고 다녔다. 무게에 지쳐 불만스러울 때도 많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수업 시간에 사전을 열심히 본 탓에 단어는 물론 뜻과 활용, 속어까지도 깊이 배운 것 같아 감사한 마음
이 크다.
비상금, 즉 용돈도 학교에 가지고 가지 못한다. 잃어버렸을 때 친구들을 의심할 수 있기에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라고. 몰래 가져가도 쓸 데가 없다. 학교 안에 매점이 없고, 점심을 집에서 해결하는 소수 학생을 제외하곤 전교생이 9시에 등교해 오후 5시까지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습관이 들어 고등학생이 돼도 지갑 없이 학교에 가거나 1유로(약 1천300원)조차 감사해하며 돈을 아껴 쓴다고.



내용이 같은 2권의 교과서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학기 초 교과서 선택이다. 스페인에서 반사립학교 또는 사립학교의 교과서비는 초등학생은 250유로, 중학생은 350유로 이상으로 매우 비싼 편이다.
자녀가 둘 이상이면 교과서 구매비만으로도 허리가 휠 지경. 그래서인지 같은 내용, 같은 디자인의 교과서가 두 종류 있다. 메모를 할 수 있는 책과 없는 책이다.
처음 스페인에서 교과서를 주문했을 때 영수증을 1년간 잘 보관하라는 말을 하기에 교환용으로 가지고 있으라는 뜻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영수증과 깨끗한 책을 학교에 제출하면 구매비의 30%를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학교가 책을 구입해, 원하는 학부모들에게 원가의 절반 가격으로 판매하거나 1년간 빌려주는 것. 교과서를 물려줄 형제가 없는 집에서는 재판매를 목적으로 메모하면 안 되는 책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들도 수업 시간에 교과서의 문제를 노트에 다시 적어서 풀도록 유도하고 책을 소중히 대하라고 가르친다.

언뜻 불편하지만, 돌아보면 학교 규칙은 자녀의 학교생활은 물론 생활습관까지 제대로 자리 잡게 했다. 전자사전 대신 종이사전을 들춰보니 더디지만 제대로 된 스페인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교과서를 재활용하거나 학교에 매점을 두지 않는 것은 결국 경제관념으로 이어진다. 스페인 학부모들은 적어도 중학교까진 등하교를 함께하니 사춘기 자녀의 학교생활이나 교우관계를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나 역시 “빨리 빨리”나 “공부에 도움 안돼”라는 말보다 “괜찮아” “해봐”라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되고, 내 자유 시간을 잃은 만큼 아이의 학교생활을 알게 됐다.
옛말에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이 필요하다 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학교와 가정이 함께 힘을 모으는 가교가 조금은 시대에 뒤처진 스페인 학교규칙이 아닐까 싶다.






1. 스페인 학교는 하교 시 교사가 부모를 확인한 후 자녀를 보내준다.
사진은 대기하는 부모와 자녀와 만난 부모들이 섞여 있는 하교 풍경.
2. 전자사전 대신 아들의 공부를 도와준 종이사전들.
3. 스페인에선 아빠들의 육아 참여율이 높다. 함께 동생들을 데리고 큰아이를 데리러 온 남성의 뒷모습.
4. 메모하지 않은 깨끗한 교과서를 구매 영수증과 반납하면 책값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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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LOBAL EDU 학부모 해외통신원 (2018년 04월 8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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