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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857호

GLOBAL EDU 학부모 해외통신원

"학부모들 차 빼세요" 원칙대로 학생 안전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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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학교 교칙은 보수적이지만 각자 개성을 존중한다. 하지만 양보하지 않는 규칙도 있다. 바로 안전이다. 학교 경비원들이 학부모에게 큰소리를 치는 모습은 낯설다. 하지만 조금 덜 친절해도, 내 아이의 안전만큼은 양보 없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어느새 더 커진다.



교칙엔 안 되는 돼지고기, 반찬은 눈감아
말레이시아의 학교 교칙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종교나 생활과 관련한 것들이 여럿이다. 외국인으로서는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작은아이의 학교 교칙 중 음식에 관련된 규칙이 기억에 남는다. 돼지고기나 돼지고기를 사용한 어떤 음식도 교내로 반입을 금지한다는 내용. 아마도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라 이런 조항이 만들어졌지 싶다. 실제로 학교 식당에서는 식재료로 돼지고기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시락 반찬으로 가져온 아이를 제재하는 일은 없다. 작은아이의 도시락 반찬은 돈가스나 제육볶음, 햄 등 돼지고기를 재료로 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한 번도 주의를 받은 적은 없다.
이는 다양한 인종을 배려하는 말레이시아 특유의 문화가 적용된 것 아닌가 싶다. 이슬람교가 국교이지만 종교 문제에 매우 배타적인 중동과 달리, 말레이시아는 종교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한다. 실제 소수이긴 하나 힌두교, 인도, 불교, 도교 등 아시아에서 발생한 종교는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까지 쉽게 볼 수 있다. 국민 다수가 무슬림인 만큼, 학교가 공급하는 음식에 대해서는 교칙으로 정해뒀지만 학생 개개인의 반찬은 제재하지 않음으로써 출신 국가의 식문화나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준 것으로 해석하게 됐다.
아이들도 이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종교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친구에게 ‘네가 믿는 신은 왜 그렇게 먹지 말라는 음식이 많아?’라고 비아냥거리는 일이 없다. 서로의 ‘다른 것’을 쿨하게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다름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 서로 한 발짝씩 다가간다. 학교에서부터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는 셈이다.


철저한 학생 보호 인상적
또 하나 인상적인 교칙은 헤이즈(haze)다.
헤이즈란 9~10월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시아로 날아오는 연무를 뜻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대규모 농장을 만들기 위해, 밀림에 인위적으로 불을 내어 화전을 만드는데 이때 발생하는 매캐한 연기나 재가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등 인접 국가에 퍼져 심각한 대기오염을 야기한다.
해마다 발생하진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온 나라가 비상사태다. 미세먼지 문제는 이곳에서도 상당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교육부 역시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헤이즈로 인한 대기오염지수(API)가 225 이상이면 전 국토에 휴교령을 내린다는 지침이 있다.
실제 2~3년 전 심각한 헤이즈로 인해 현지 학교에 이틀간 휴교령이 내려졌다. 교육부의 관리에서 벗어나 있는 국제학교도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 휴교하거나, 등교는 하되 야외 활동은 하지 않았다. 또한 학교 측은 학교 안내서에 학생들의 건강 보호를 위한 헤이즈 관련 수칙을 자세히 수록해 놓았다. 한국에서도 최근에서야 미세먼지 대응 지침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말레이시아가 한 발 앞서 이런 제도를 구축하고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학생들의 건강을 중시하는 만큼, 안전에도 예민하다. 학교 경비원은 학부모라고 마냥 친절하지 않다. 주차 규칙을 어겼다간 오히려 호통을 듣기 일쑤다. 학부모가 자녀를 차량으로 등하교시킬 때 지정 장소에서만 승·하차가 가능하고, 덜 붐비는 수업 시간이나 방과 후라도 해당 지점에선 주차는 커녕 정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잠깐 세우려고 하면 경비원이 득달같이 달려와 ‘차 빼라’며 호통을 친다. 한국에서 온 학부모들은 경비원의 강압적인 태도에 당황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적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녀를 보호하는 경비원을 이해하게 되고,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말레이시아 학교에서 다양한 규칙을 접하면서, 알지 못했던 이 나라의 문화를 많이 알게 됐다. 사실 청소년 자녀를 둔 한국 가정이 아시아 지역에서 거주할 때 중국, 일본을 제외하면 현지 학교보다 국제학교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한국보다 경제력이나 교육열이 낮다는 판단에 영어를 중심으로 교육시키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를 통해 말레이시아 현지 학교를 접하면서 우리 못지않은 높은 교육열을 체감했다. 동시에 공부도 중요하지만 학교가 자녀의 개성을 존중하고, 학생의 건강과 안전만큼은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입견을 많이 내려놓게 됐다. 다양성을 어떻게 존중하는지, 아이는 물론 나 역시 말레이시아의 학교를 통해 이해하고, 배우고 있다



1. 각 국제학교의 교육 비전과 교칙 등을 수록한 안내서들.
2. 작은아이의 도시락과 간식.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찜을 가져가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
3. 교내 승·하차 지점과 승·하차 지점에 세워둔 경고 표지판.
재학생 학부모라도 이 지점에 주차하는 등 교칙을 어기면 경비원에게 엄한 주의를 받는다.
4. 2015년 말레이시아 교육부와 페낭 교육부에서 보내온 헤이즈로 인한 휴교 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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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LOBAL EDU 학부모 해외통신원 (2018년 04월 8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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