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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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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평가로 영어 교육 부실화? 번지수 잘못 짚었다

최근 한국영어영문학회와 한국영어교육학회 등 31개 영어 관련 학회가 수능 영어 절대평가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이들은 “수능 영어 절대평가가 학교 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감소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학교 영어 교육의 부실화를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2014년 영어 절대평가가 결정된 이후 다른 주요 과목보다 큰 폭으로 감소한 영어 교사 임용 비율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과 근거는 다음과 같은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한다.
①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실시하면 일선 학교는 영어 교과의 중요도를 낮게 책정하고 학생들은 영어 학습을 등한시할 것이다.
② 1의 결과, 학교는 교육과정을 설계할 때 영어 비중을 낮출 것이고 학생들은 영어 선택 과목을 과거에 비해 덜 신청할 것이다.
③ 2의 결과, 영어 교사의 임용 비율은 국어, 수학 교과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물론 수능 영어 절대평가에 따라 비중이 약화됐다고 생각한 나머지 학생들이 영어 과목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또 수능 출제 범위에 속하는 <영어Ⅰ> <영어Ⅱ>를 제외하고는 영어 선택 과목을 수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는 일면 타당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알고리즘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놓치고 있다.

첫째, ①의 내용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수능에서 영어가 절대평가로 실시되고 있기는 하나, 정시에서 수능 영어 등급이 낮을 경우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대학이 영어 등급에 따라 점수를 부여해 산출하는 방식과 가산점 형태로 별도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을 활용해 영어 성적을 적극 반영하기 때문이다. 수시 또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영어 절대평가 실시로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학생들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최저 기준을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하거나 높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타 영역과 영어 영역을 분리해 최저 기준을 제시한 전형도 생겨났다.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되어도 입시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둘째, ②의 내용 또한 적절하지 않다. 이는 ‘수능 점수를 잘 받으려면 전략적으로 출제 범위가 아닌 과목은 수강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순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 발상이다. 하지만 대입 전형 요소에는 수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시 모집보다 더 큰 비율로 선발하는 수시 모집에서는 오히려 학생부가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형 요소다. 즉 학생부 종합 전형에 효과적으로 대비하려면 일반선택 과목군의 <영어Ⅰ> <영어Ⅱ>뿐 아니라 <영미문학읽기> 같은 다양한 진로선택 과목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 주변 학교에서 교육과정 편성상 영어의 수업 시수를 줄인 사례를 찾기 쉽지 않다. 오히려 수능 영어 절대평가 이후 학교 현장에서는 여러 유의미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수능을 위한 읽기와 듣기에 치중한 나머지 정작 외국인과 한마디도 나눌 수 없고, 자신의 의견을 한 줄도 쓸 수 없었던 과거 영어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활발하게 제시된 것이다.

셋째, ①과 ②의 내용은 영어 교육의 본질적인 의미를 고려할 때에도 옳지 않다. 결국 31개 영어 관련 학회에서 발표한 입장문은 영어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목적을 실현하기보다 오로지 수능에 집착한 밥그릇 싸움의 결과물에 불과하다. 학자들이 진심으로 학교 영어 교육의 부실화를 고민했다면 수능 영어를 다시 상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었다. 이는 수능 영어 준비에 매몰되는 것도 진정한 영어 학습으로 볼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교 현장에서 영어 교사들은 수업 혁신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단어 정리, 문법 설명, 우리말 해석 등으로 재미없게 진행되던 수업, 그러면서도 영어 역량 제고와는 거리가 멀던 수업이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영어 능력 또한 향상시킬 수 있는 수업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참에 아예 수능에서 영어 영역을 뺀다면 학교 영어 교육이 더 빠르게 정상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되었다고는 하나 그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에, 학생의 외국어 역량 함양을 위한 과정 중심·학생 중심 수업은 아직까지 쉽지 않다. 따라서 진정으로 학교 현장의 영어 교육을 바꾸려면, 그 변화를 가로막는 병폐들을 도려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수능 응시 교과에서 영어를 제외하는 데 있다.


주석훈 교장
서울 미림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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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EKLY CLOSING (2018년 07월 8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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