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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869호

REPORTER'S DIARY

상대평가의 민낯, 추하다

기말고사를 끝으로 한 학기가 마무리됐다. 고2 아들은 학교에 교육은 없고 평가만 있는 것 같아 학기 내내 학교 다니는 게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과정 중심의 수행평가가 정착되고 학생 중심의 수업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학교 현장은 상대평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 90점을 받아도 90점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많으면 1등급을 받지 못하는 게 상대평가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활동 과정을 자연스럽게 즐겨야 하는데 상대평가라는 틀에 얽매여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니 아들 역시 피로도가 쌓인 눈치다.
그렇다 보니 또래 친구들끼리 지켜야 할 선을 넘은 아이들을 보면 ‘추하다’ ‘◯◯(친구 이름)스럽다’로 표현하며 과도한 내신 경쟁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것 같다.


1학기 동안 아들이 달고 살았던 말, ‘추하다’에 얽힌 에피소드다. 영어 중간고사를 앞둔 어느 날, 아들이 중요 단어와 문장을 지워 만든 빈칸 문제지를 인쇄해 절친인 A에게 건네주다가 B라는 친구와 시비가 붙었나 보다. 왜 A에게는 주고 자신에게는 주지 않느냐고 B가 따졌다는 것이다. 아들은 친구에게 프린트 한 장 건네는 것도 주위 눈치를 봐야 하냐며 저녁 내내 긴 한숨과 함께 “추하다”를 내뱉었다.
지나치게 점수에 예민하다 보니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는 학생도 종종 있나 보다. 선생님이 노트 검사를 하면서 C라는 학생에게 다시 필기를 해오라고 한 것. 한 주가 지나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이 노트를 다시 검사했는데 C가 그런 얘기 들은 적이 없다며 오히려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더란다. 이를 지켜본 아이들이 그날 이후 성적과 관련해 선을 넘으려고 하면 경각심 차원에서 점잖게 ‘◯◯(친구 이름)스럽다’를 외친다고.
매주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1교시에 수행평가를 보는 과목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3교시에 같은 교과 수업이 옆반에 있는데 수행평가 내용이 똑같단다. 매번 1교시가 끝나면 출제 내용을 물으러 오는 D라는 학생이 있었나 보다. 상대평가하에서 문제를 가르쳐달라는 것 자체가 친구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이니 서로 물어보지 않는 게 예의인데 유독 D가 억지를 써 짜증이 났다는 얘기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끼리 헛기침과 함께 “추하다”를 말하며 네 반으로 돌아가라고 눈치를 주는데도 못 들은 척해 답답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아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과연 어른들은 상대평가로 인해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감정 소모를 하고 있는지 알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언제까지 아이들을 상대평가로 줄을 세울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추하다”라는 말을 건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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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혜경 리포터 hkhong@naeil.com
  • REPORTER’S DIARY (2018년 07월 8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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