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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870호

REPORTER'S DIARY

영어 시험 유감

“글쎄, 내 말 좀 들어보세요. 학교 영어 수업 시간에 시험을 보는데 2개 이상 틀리면 손바닥을 맞는대요. 아직도 그렇게 영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는 게 놀랍지 않아요?”
영어 성적이 잘 안 나와서 골머리를 앓던 둘째 아이 친구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낸다. 솔직히 놀랐다. 학교 현장이 많이 바뀌고 수업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내가 영어를 배웠던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영어 수업을 하고 있는 걸까. 솔직히 속마음으로는 ‘영어 단어 외우는 데는 그만한 방법이 없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백하면 내 영어 실력의 8할은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 덕분이다. 기억은 자연스럽게 여학생 60명이 한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받던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3번, 13번, 23번, 33번, 43번, 53번 나와.”
호명된 학생들은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칠판 앞에 한 줄로 섰다. 선생님이 지난 시간에 배웠던 영어 단어를 말하면 우리는 단어의 뜻을 쓰고 액센트를 표시하고 동사, 형용사, 명사, 부사형에 반대말, 동의어까지 적어야 했다. 모두 10문제였는데 각 단어마다 파생어까지 써야 했기 때문에 외워야 하는 단어는 30개 이상이었다. 이 중 4개 이상 틀리면 선생님이 가지고 다니는 자로 손바닥을 맞았다. 누가 걸릴지 알 수 없었기에 안 맞으려고 기를 쓰고 단어를 외운 기억이 난다. 친구들 앞에서 자존심 구기기 싫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선생님 입장에서도 제자들의 손바닥을 때리는 게 좋았을 리 없다. 선생님의 교육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제자들을 위하는 마음 없이는 굳이 그런 힘든 일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선생님이 2년 연속 영어를 가르쳤다. 좀 우악스러운 방법인지는 몰라도 내 영어 실력의 밑거름은 그때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학교 영어 시험은 시험 범위를 무조건 달달 외워야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주변의 한 엄마는 영어 내신 대비를 위해 고액 과외를 시키는데 안 할 때는 63점, 해서 68점이 나왔다고 혀를 찬다. 과외 선생님이 5번 이상 교과서를 외우게 했는데도 그 모양이라며 한탄했다. 수능 영어에서 표준점수 만점을 받은 큰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기본이 부족해서란다. 기본기가 약한 아이에게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 무조건 교과서를 외우도록 하는 방식은 실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당장 성적이 안 나오더라도 실력을 쌓는 공부를 해야 나중에 결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말고사를 끝낸 둘째 아이의 영어 시험지를 꺼내보았다. 교과서에 없고 수업에서도 배우지 않은 외부 지문이 3개가 나왔다. 낯선 문제도 버거운데 교과서 지문도 조금씩 변형해서 나오니 당황할 만도 하다. 영어 공부에 왕도는 없다. 문법을 익히고 단어와 숙어를 많이 외우고 매일 30분씩이라도 꾸준히 공부하는 것.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방법이 영어 공부의 비법 아닌 비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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