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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878호

REPORTER'S DIARY

시험 보는 교실의 풍경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며칠 전, 잊지 말고 시험감독으로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당번 날짜는 중간고사 첫째 날, 연휴 바로 다음날이었다. 지난 3월 학부모 총회 때 신청한 것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날짜도 내가 고르고 신청서도 내가 직접 썼지만 갈 때가 다가오니 꾀가 났다. ‘괜히 신청했어. 차라리 낮에 가는 급식 모니터링을 할 걸. 몸이 아파서 못 간다고 할까?’ 속으로 이런저런 궁리를 해봤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사무실에 매인 몸이 아니니 따로 휴가를 낼 필요도 없고, 아침 일찍 가는 거 말고는 크게 힘들 게 없다. 교실 뒤편에 학부모용 의자를 따로 마련해주기 때문에 계속 서 있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왠지 부담이 되고 벌서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침 6시 48분, 딸을 셔틀 버스에 태워 보낸 뒤 고양이 세수만 하고 학교로 출발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7시 40분, 대기실에 잠시 있다가 딸의 옆반으로 배정을 받아 교실로 갔다. 시험이 시작되고 교실 뒤편에 서서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시험지 안으로 들어갈 것처럼 머리를 숙이고 문제를 푸는 아이, 머리를 며칠 못 감은 듯 머리에 기름이 끼고 떡이 진 아이, 문제가 잘 안 풀리는지 초조하게 다리를 떨면서 연필을 씹는 아이의 모습이 자꾸 딸아이와 겹쳐 보였다. 글이 빽빽한 시험지가 10쪽 가까이 됐는데 정해진 시간 안에 다 읽고 문제를 풀려면 충분히 공부했어야 할 뿐 아니라 높은 집중력도 필요할 터다. 그 어렵고 대단한 걸 모든 아이들이 예외 없이 해내야 하는 교육 현실이 새삼 놀라웠다.


시험 보는 교실의 풍경은 딸이 중학생일 때부터 해마다 한 번씩 봐왔기 때문에 새롭거나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학기가 끝나면 고3이 되는 딸아이 때문에 마음이 더 착잡했나 보다. 아이가 느끼는 시험의 무게가 충분히 무거워 보여 이번에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보태지 않았다. 덕분에 모녀가 평화롭게 시험 기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기 전에는 무척 귀찮았는데 이만하면 다녀온 보람이 충분한 것 같다. 중·고생 자녀를 둔 엄마라면, 특히 나처럼 공부 잔소리를 많이 하는 엄마라면 한 번쯤 시험감독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덧붙여 주의사항 몇 가지를 소개한다. ‘굽 소리 안 나는 신발 신기’ ‘아이들 옆에서 문제 푸는 거 보지 않기’ ‘자극적인 향수 뿌리지 않기’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밖으로 전하지 않기’ ‘휴대전화는 아예 전원을 끄기’ ‘혹시라도 졸지 않기’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의외로 현장에서 많이 일어나는 실수라고 하니 흘려듣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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