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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뉴스

878호

WEEKLY CLOSING

“다른 아이들이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 있죠?”

18세기 후반 이래 유럽인들은 아시아 대륙을 극동(極東)·중동(中東)·근동(近東)으로 대별했다. 특히 극동은 한반도, 중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근동이나 중동보다 훨씬 먼 동방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종래 유럽인의 시각을 드러내는 호칭인 셈이다. 그런데 유럽인도 아닌 우리는 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일까? 이 표현 속에 숨어 있는 유럽인의 시각, 즉 유럽이 전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고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특정 지역의 이익 또는 시각을 무의식적으로, 또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교육 정책을 결정할 때 참고하는 의견 중 하나가 여론인데, 그 여론이라는 것은 대개 언론을 통해 나타난다. 그런데 언론 보도는 대부분 서울 중심이다. 더 안타까운 점은 서울 내에서도 25개 자치구 중 학원들이 집중된 지역의 의견이 대세인 양 보도된다는 데 있다. 결국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은 대체로 강남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말 많은 소수의 의견이 말 없는 다수의 의견 위에 서는 셈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비단 교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 최근 정부가 서울 및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위해 발표한 ‘9·21 주택 공급 대책’에 대해 신규 공공택지로 지정된 지역의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주민들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기존 시가지의 슬럼화 우려, 집값 하락, 교통 혼잡 등이 반대 이유다. 미분양이 남아 있는 기존 신도시 주민들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집값이 올라 혜택은 서울 사람들한테 다 돌아갔는데, 그 유탄은 우리한테 맞으라는 것과 뭐가 다르냐며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2 지난 2011년 여름 이틀간 계속된 비로 서울 우면산에 산사태가 나는 사이, 팔당댐 바로 위에 있는 곤지암천과 경안천에서도 강물이 넘쳐 마을이 물에 잠기고 여섯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사고가 있었다.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한강의 수위와 팔당댐의 방류량을 기사로 내보냈다. 팔당댐의 방류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서울이 범람할 수도 있고 팔당댐 상류가 범람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류량 결정의 방정식에서 상류의 수위나 범람 위험이 변수가 되지는 않았다. 주민들은 넘쳐온 강물을 피해 대피하면서 생생하게 증언했다. “서울 주민들 살리려고 수문을 너무 늦게 열어 사고가 났다.”
다시 교육 문제로 돌아와보자. 우리나라 교육은 왜 서울, 그것도 강남 중심이어야 하는가? 어느 지역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든 우리의 귀한 인재들이다. 그 지역의 대들보들이다. 유럽 중심의 사고가 세계의 보편적 문화와 가치를 대변할 수 없는 것처럼, 서울의 지향점이 우리나라 각 지역의 지향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곳의 가치가 타 지역의 가치보다 우월해서는 안 된다.


학력의 개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도 획일적인 하나의 평가 잣대로 서울 학생이, 강남 학생이 우수하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세뇌시켜서는 안 된다. 수능 문제의 다양한 지문이 서울 중산층 이상에게, 또 사교육에 의해 집중적으로 ‘조련’된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간의 편견에서 벗어나, 언론의 편향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서울의 강남뿐 아니라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교육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다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 연구 중이던 어느 인류학자가 한 부족 아이들을 모아놓고 게임을 제안했다고 한다. 나무 옆에 싱싱하고 달콤한, 아프리카에선 보기 드문 딸기가 가득 찬 바구니를 놓고 누구든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에게 과일을 모두 주겠노라고 했다. 인류학자의 예상과는 달리 그의 말이 통역되어 전달되자마자 아이들은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손에 손을 잡은 채,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바구니에 다다르자 모두 함께 둘러앉아 입 안 가득 과일을 베어 물고 키득거리며 나눠 먹었다.
인류학자는 아이들에게 “누구든 일등으로 간 사람에게 모든 과일을 주려 했는데, 왜 손을 잡고 같이 달렸느냐?”고 묻자 아이들의 입에선 “UBUNTU*”라는 단어가 합창하듯 쏟아졌다. 그리고 한 아이가 이렇게 덧붙였다. “나머지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 있죠?”
*UBUNTU: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 ‘당신이 있기에(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



주석훈 교장
서울 미림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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